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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호시탐탐입니다. 시끄럽던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에 휴전이 시작되면서 인질 협상이나 영구 휴전의 목소리도 여러 곳에서 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다뤄볼 내용은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가 왜 계속해서 팔레스타인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지에 관해서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선 네타냐후라는 인물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과거에 주목하기 보단 이스라엘 국내 정치적인 모습을 살펴보면서 네타냐후의 강경 대응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쯤 시행된 제25대 이스라엘 총선 결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지지자들은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셋(Knesset) 의석 중 과반의 의석을 차지하게 됩니다. 네타냐후는 과거에도 이스라엘에서 장기간 총리를 역임한 인물입니다. 네타냐후가 처음 총리로 당선되었을 때를 살펴보면 당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 협정인 오슬로 협정이 이루어지던 시기로 올라갑니다.
당시 오슬로 협정에 서명한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가 암살되고 나서 이후의 선거에서 네타냐후가 당선된 것인데요. 그는 첫 번째 당선 때 평화회담으로 인해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보고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평화회담에 반대하며 유권자들에게 어필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집권한 네타냐후는 미국의 압력을 이기지 못했고 결국 우파 정부가 무너지는 결과를 맞이합니다.
이 같은 일을 경험한 네타냐후는 2009년 다시 총리직에 복귀하고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정 보다는 이스라엘의 안보 정책에 집중합니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공식 유대국가로 인정하고 비무장화하면 팔레스타인을 조건부 인정하겠다며 안보를 위시한 강경책을 고수하게 됩니다.
이런 네타냐후 총리가 작년 총선에서 다시 권력을 잡았고 이번에 그가 꾸린 정부는 이스라엘 사상 가장 극우적인 색채를 띄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과거 그는 여러 부패 혐의를 가지고 한 번 실각한 바 있었고 재판을 받는 와중에도 이번에 재집권을 위해 그는 여러 정당 등과 연합한 극우 연합을 꾸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네타냐후 총리가 재집권을 위해 극우 연합을 형성하면서 이스라엘 의회 크네셋의 120석 중 네타냐후 지지 정당이 64석을 얻게 되고 전 정부 지지 정당이 51석을 차지하게 됩니다. 네타냐후를 지지하는 정당에는 네타냐후가 속한 리쿠드당, 독실한 시오니즘당, 샤스, 토라유대주의 연합 등의 당이 속해있는데요.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의 의회인 크네셋은 단원제이며 우리나라와는 달리 지역구가 없는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국 단위로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최소 3.25%의 득표율을 넘는 정당에 한해서 의석수가 배분됩니다. 여기서 반네타냐후 세력이며 전 연립정부를 지지하는 메레츠(Meretz)와 발라드(Balad, 아랍정당) 정당이 연합을 해야 안정적으로 3.25%의 득표율을 얻을 수 있었는데, 각 정당이 연합에 실패했고 네타냐후를 지지하는 정당들은 성공적으로 득표율을 가지며 집권에 성공합니다.
결과적으로 극우적인 색체가 강한 정당들이 집권하게 되는데요. 이 정당들 중에서도 시온주의 정당의 참여가 주요한 부분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우파 연정에서 극우 정당인 오츠마 예후디트(Otzma Yehudit)와 노암(Noam)이 독실한 시오니즘당과 합동 선거를 치르도록 설득하여 더 많은 의석수를 받는데 성공합니다.
여기서 극우 정당인 오츠마 예후디트(Otzma Yehudit) 당의 이타마르 벤그비르는 현재 정부에서 국가안보장관으로 임명됩니다. 문제는 벤그비르라는 인물이 미 국무부가 지정한 테러 단체인 ‘카흐’의 일원이었다는 점입니다. 카흐는 반아랍적인 색채를 띄는 단체로서 아랍인을 차별하고 유대인 순혈주의 옹호하는 단체인데요. 카흐는 폭력 사용을 정당화하는 위험한 단체입니다. 벤그비르 장관은 현재는 카흐를 따르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카흐를 창설자의 추모 행사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벤그비르가 국가안보장관직에 오르자 큰 우려를 보이고 있습니다. 벤그비르 장관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선동을 하거나 테러 지원 등으로 사법부에서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고 이번 년도 초에는 네타냐후 총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과 계속해서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중심지인 동예루살렘을 방문해 큰 반발을 산적이 있습니다. 해당 지역은 이번 하마스와의 전쟁 촉발에서도 언급된 알아크사 사원을 포함한 지역으로 비무슬림의 기도와 예배가 금지된 지역입니다. 벨그비르 장관의 이런 행보에 UAE는 네타냐후 총리의 UAE 방문을 잠정 연기해버리고 사우디, 이집트 등의 아랍권과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이 이 방문을 규탄하기도 합니다.
추가적으로 재무부 장관이자 민간 협조관으로 팔레스타인 정착촌 문제를 전담하는 베잘렐 스모트리히(Bezalel Smotrich) 장관은 공개적으로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반대하고 서안 지구 내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 혹은 완전 합병 주장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 같은 건 없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하며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추가로 스모트리히 장관은 허가 없이 지어진 이스라엘 건축물 철거를 목적으로 NGO를 조직해 감시하며 팔레스타인 차별 정책을 지지하는 인물입니다.
이처럼,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의 당인 리쿠드당과 과거에도 리쿠드 동맹을 형성했던 샤스와 토라 유대주의당에 더해 독실한 시오니즘 당까지 끌어들여 집권에 성공했습니다. 당연하게도 그들을 끌어들인 만큼 자리를 배분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과거보다 극우적인 정부가 형성되면서 짙은 색채를 띄게 되었습니다. 결국 네타냐후 총리도 자신의 직을 유지하고 사법부를 무효화하기 위해선 이들의 요구가 반영된 결정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네타냐후 총리가 집권한 후 이스라엘의 연합 여당은 사법 개혁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극우 연합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민주주의에서 최후의 방파제 역할을 하던 사법부를 무력화하고자 하는 것인데요. 여기에는 팔레스타인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서안 지구를 합병하는 등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법적 제약을 없애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여권이 주로 변경하고자 하는 사법 개혁은 첫번째로 법관임명위원회의 구성 변경 두 번째로 대법원의 사법심사 제한 및 판결 무력화 등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법관 임명위원회를 바꾸고자 하는 것은 법관임명위원회가 법관이나 판사를 임명하는데, 정부가 법관위 9명 중 5명을 임명하는 등 법관 인사에서 영향력을 늘리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기본법을 위배한 법률이 무효로 판결 날 때 이를 국회의원 과반의 찬성으로 다시 제정할 수 있게 하며 통과되지 않더라도 4년 후 차기 의회가 동일한 법을 재입법할 시 대법원의 심사가 면제되도록 개혁하고자 합니다.
이 밖에도 대법원의 판단을 제한하는 개혁 조치들로 이스라엘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다는 여러 우려 섞인 시각이 표출되었고 시위로 이어집니다. 이번 년도 들어 이스라엘의 법조계, 군, 기업, 학생 등 여러 계층이 결집하여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평균 10만명에 달하는 대규모 시위가 계속해서 열리고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으며 몇몇 군부대에서는 명령 거부 의사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한 바에 더해 거기에 산업 종사자들의 파업과 여러 지식인들의 반발로 이스라엘에 큰 혼란이 야기됩니다.
네타냐후 입장에서는 거대한 국내적 반발에 계속 직면할수록 자신의 재집권 여부는 불투명해지면서도 지지 세력의 요구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네타냐후에게 하마스의 도발로 시작된 하마스와의 전쟁은 작금의 국내적 혼란을 종식시키고 관심을 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짐멜(Georg Simmel)이 제시한 내부집단-외부집단 가설에 따라 외부집단과의 갈등이 증가할수록 내부집단의 응집성과 정치적 중앙집권화가 증가된다는 것을 보면 네타냐후 총리 입장에서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하마스의 잔혹한 공격과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여기에 대한 대응에 따라 일종의 안보결집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마스와의 전쟁이 격화되어 국민적 감정이 격화될수록 우파 연합의 요구와 국민들의 요구가 일치될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서 네타냐후는 하마스에 더욱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전쟁 이전에 겪고 있던 위기 상황을 타개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네타냐후에겐 부패나 사법 개혁으로 추락한 이미지를 쇄신할 기회로 인식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지금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