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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호시탐탐입니다! 오늘은 여러 나라들 간의 분쟁 그 중에서도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 중에 하나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안에 존재하는 국가인데요.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국가가 기형적으로 존재하는 형태입니다.
이 분쟁은 종교와 민족이 정말 강하게 결합되어 있는 형태라고 볼 수 있는데요.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과 기존에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고 있었던 아랍인인 팔레스타인인들 간의 갈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영토는 이스라엘 내부로 요르단강 서쪽에 서안 지역(West Bank)과 그 대각선에 위치한 가자 지구로 나뉘어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두 지역으로 나뉘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안에 어느 정도 자치를 보장받는 형태로 존재하는데요. 이들은 왜 이렇게 나뉘게 된 걸까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시작된 국제사회 그리고 중동의 고질적인 분쟁입니다. 서기 70년경 로마와의 전쟁으로 인해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한 유대인들은 유럽의 전역으로 흩어져 디아스포라가 되었는데요. 그런데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반유대주의에 대한 성향이 강해지면서 유대인들은 프랑스와 러시아 등에서 탄압받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유대인들 사이에선 시오니즘이 확산되게 되면서 유대인들은 과거 그들의 땅인 이스라엘 지역으로 회귀하게 됩니다.
시오니즘은 간단히 말해 유대인들 사이에서 본래 자신이 살던 지역으로 회귀하자는 운동을 말합니다. 1882년부터 ‘시오니즘’이 퍼지면서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의 땅이었던 팔레스타인으로 몰려들게 됩니다. 시오니즘(Zionism)의 시온은 예루살렘에 있는 언덕이자 이스라엘 백성의 천국을 가리키기도 하는데요. 따라서 시오니즘 혹인 시온주의 운동이라 하면 “하나님이 유대인을 위해 만드신 땅이니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서 유대 국가를 건설해야한다”라는 의식이 잠재된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떠나고 오스만 제국이 인근 패권을 쥐면서 팔레스타인에는 이슬람을 믿는 아랍인들이 자리잡게 됩니다. 당연하게도 갑작스래 유대인들이 몰려오자 두 민족은 충돌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게다가 제국주의의 선두주자였던 영국이 들어오면서 현재의 갈등에 기여하게 됩니다. 당시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간의 크림 전쟁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을 도와 러시아를 격퇴하면서 자연스레 팔레스타인 지역에도 영국이 진출합니다.
이 지역에 진출한 영국은 인도와 파키스탄에게 행했던 분열 정책처럼 또 다른 문제적인 정책을 피게 됩니다. 20세기에 들어서 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면서 오스만 제국은 영국과 반대편 측에 서게 되는데요. 영국은 유럽 지역에서의 전쟁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스만 제국을 상대하기 위해 중동권을 분열시킵니다. 당시 아랍 민족의 대표였던 후세인과 맥마흔이 만나 협정을 맺어 오스만 제국에 아랍 민족이 맞서 싸운다면 아랍 국가 건설에 영국이 도와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여기에 더해 영국은 당시 1차 대전에 미국을 끌어들이고자 했고 미국에서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 집단을 회유하고자 합니다. 또한 당시 유대 재벌들의 재정적 지원을 노리고 유대인들을 회유하게 됩니다. 따라서 영국의 외무장관 벨푸어는 ‘벨푸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국가 건설을 돕겠다고 약속합니다.
즉, 영국은 아랍 민족에게는 중동에 아랍국가 건설을 약속하고 유대인에게는 유대 국가 건설을 지원하기로 한 모순적인 약속을 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1차 대전 후 팔레스타인 지역에 영국의 위임 통치가 시작되고 영국이 유대인들을 우대해주는 정책을 피게 되면서 유대인들의 인구가 증가하게 됩니다. 거기다 2차 세계 대전과 유대인 학살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들이 30%가량을 차지하게 되고 ‘하가나’라는 유대인들의 자체 무력 조직을 결성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 내 영향력을 확대합니다.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과거의 영국과의 약속도 있고 굉장히 억울한 사안이었지만 당시 홀로코스트나 반유대주의 등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던 유럽 입장에서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이 이주하는 것은 꽤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기조 아래 1947년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유대 국가와 아랍국가를 동시에 세우는 유엔안이 통과됩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여러 국가들이 분리 독립하는 기조에 따라 영국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나오고 유엔의 결의안에 따라 팔레스타인 지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국가가 설립되게 됩니다. 초기에 56%의 땅을 이스라엘에 44%의 땅을 팔레스타인에 할양하게 됩니다. 하지만 국가 설립과 동시에 주변 아랍 국가들은 중동 지역에 유대 국가의 설립을 용인하지 않았고 제1차 중동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후 총 네 차례에 걸쳐 일어난 중동 전쟁으로 인해 수십만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생겨나게 되었고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강한 군사력을 갖춘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하며 오히려 영토를 확장하게 됩니다.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으로 지금의 이스라엘의 영토를 확정시킵니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을 통해 시리아의 골란 고원, 요르단강의 서안 지구, 가자지구와 사나이반도를 점령하면서 해당 지역을 실효 지배합니다.
마지막 4차 전쟁에서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전쟁 결과 이스라엘은 이집트에 빼앗은 사나이 반도를 돌려주는 대신 이집트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인정하고 국교를 정상화하게 되면서 중동의 양상이 달라지게 됩니다. 거기에 4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피로감이 쌓인 아랍국가들로 인해 팔레스타인인들은 점점 고립되고 무장 테러로 대응하게 됩니다.
초기에 유대인들이 넘어오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의 토지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확대했고 후에는 군사력을 사용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장악하게 되면서 초기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팔레스타인인들은 현재로선 테러의 방식으로 대응하게 됩니다. 지난 기간 동안 이스라엘 정부는 동예루살렘이나 서안지구 그리고 가자 지구 등 전통적인 아람 마을에서 팔레스타인들을 쫒아내고자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추진합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이 거주하는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에 이주하는 사람들에게 정착금을 지원하는 형태로 이주를 장려하고 무력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냅니다. 이스라엘은 1967년 레비 에쉬콜 정부 하에 3차 중동 전쟁으로 점거한 지역을 이스라엘로 합병시키기 위해 유대인들은 이주시키는 정책을 폅니다. 이스라엘 측은 이스라엘 점령지 내 정착촌 건설은 성서에 따른 명령 수행으로 종교적 의무라고 주장하며 초기보다 정착촌의 규모와 형태가 확대되어 갑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의 두 지역인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의 정착촌은 다른 성격을 띄게 되는데 가자 지구에는 종교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정착민들이 이주하고 서안 지구에는 이들과 더해 러시아계 이민자들이나 일반 이스라엘인들도 이주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서안 지구에는 신도시 형태의 정착촌이 생기고 팔레스타인 거주지와 생활 공동체는 점점 흐릿해지게 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정착촌 건설로 실효적 지배를 유지하고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통치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이러한 정착촌을 형성하고 기존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주민들간의 갈등에서 명백하게 팔레스타인인들을 차별했는데요. 팔레스타인인은 어느 곳에 사는지에 따라 갈 수 있는 곳과 적용되는 법이 달라지고 서안지구와 가자 지구 출신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이나 동예루살렘에 사는 사람과 혼인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은 사업 참여 기회가 적고 건강과 교육 등의 서비스 제공에도 차별받습니다.
이러한 차별에 팔레스타인은 무장 봉기와 테러의 형태로 이스라엘에 맞서고 있는데요. 이들은 PLO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건설해 이스라엘에 대응하고자 합니다. 이들은 인티파다(단체 무장 봉기)를 통해 자결권을 획득하고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합니다.
1987년 팔레스타인인들은 첫 번째 인티파다를 일으킵니다. 첫 번째 인티파다는 가자 지구에서 일어난 사건이 발단이 되어 시작되었는데요. 이스라엘에서 가자지구로 넘어가는 검문소에서 이스라엘 트럭이 팔레스타인 트럭을 들이받아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사망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시위가 발생하게 됩니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죽자 시위는 더욱 심해졌고 서안지구까지 확대됩니다. 여기에 이스라엘 정부는 강경 진압, 정치범 추방, 암살 등 강경하게 대응하지만 시위는 쉽게 진압되지 않았고 미국의 정부의 중재로 평화 협정을 맺기도 합니다. 하지만 협정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며 2000년에는 2차 인티파다가 시작됩니다.
2차 인티파다는 당시 이스라엘 야당 지도자인 아리엘 샤론 총리가 동여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을 방문하여 동예루살렘은 이스라엘에 편입되어야 한다는 발언을 하여 분쟁이 촉발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샤론의 이슬람 성지 방문에 반발해 시위를 벌였고 또한 강경 진압 과정에서 12세 팔레스타인 소년이 사망하며 시위가 격화됩니다.
1차 인티파다 이후 팔레스타인은 하마스라고 불리는 과격 이슬람 단체가 등장하게 됩니다. 하마스는 이슬람 저항 운동을 뜻하는 약자로 이스라엘에 대항한 무장 투쟁을 수행하고 팔레스타인을 위한 사회 복지 프로그램을 수행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하마스는 점차 팔레스타인에 정치 과정에 개입하게 되면서 가자 지구에서 실권을 가지는 집단으로 성장합니다. 하마스는 대표적으로 오슬로 협정을 반대했던 단체였는데 하마스는 분리된 국가를 원했기 떄문에 자치에 한하는 오슬로 협정의 내용에 반대합니다.
하마스는 사람들을 이용한 자살폭탄 테러를 통해 이스라엘에 맞섭니다. 1996년 하마스 주도의 몇 차례 버스 자살폭탄 테러로 이스라엘인 60명이 사망하기도 합니다. 하마스는 파타와 더불어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자리잡으며 진료소와 학교를 건설하기도 합니다. 파타는 비교적 온건한 입장을 취하며 서안 지구를 통치하고 하마스는 가자 지구를 통치하며 강경한 입장입니다.
이처럼 하마스 진영의 계속되는 무장 투쟁와 2021년에 로켓 발사와 더불어 이스라엘의 지속되는 강경 대응 및 차별 정책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오늘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글자로 미처 다 전하지 못했지만 두 국가 사이에는 굉장히 참혹한 분쟁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