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정치] 중국 정치 구조- 마오쩌둥의 정치와 민주적 중앙집중제(Democratic Centralism) -(1)

Spread the love

안녕하세요 호시탐탐입니다 😊 오늘은 세계 2위의 강대국인 중국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중국은 아시아의 패권국이자 현재 미국과 경쟁하고 있는 초강대국인데요. 정치적으로 미국과 반대로 권위주의적인 공산당 1당 독재체제를 이루고 있습니다. 현재는 시진핑 주석에게 국가의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요.

중국의 현 지도자 시진핑

하지만 과거의 중국 정치 구조에서 모든 지도자가 지금의 시진핑처럼 집중된 권력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다른 지도자들도 집중된 권력을 가지고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맞지만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시진핑은 과거 마오쩌둥처럼 자신에 대한 우상 숭배(Cult of Personality)를 강화하고 5년 중임의 임기적 한계를 타파하고 종신 집권의 문을 열었습니다.

중국 정치는 다른 국가와 다르게 권위주의적이며 권력이 집중된 만큼 역대 지도자들에 따라 정치 형태가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역대 중국의 지도자들은 초기의 마오쩌둥을 시작으로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그리고 현재의 시진핑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이들 지도자들을 살펴보며 중국 정치 형태가 변화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중국 정치 : 마오쩌둥의 리더십

  마오쩌둥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초기 중국의 국가 주석임과 동시에 중국 정치 전반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리더입니다. 중국은 과거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경험한 국가이기도 한데요. 마오쩌둥 또한 이 시기를 겪은 일원입니다. 흔히 혁명 경험이라고 하는 이 시기를 성공적으로 보내며 마오쩌둥은 당의 핵심으로 부상합니다.

중국 대륙에는 러시아의 볼쉐비키 혁명에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 혁명의 붐이 일어났고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공산당과 국민당으로 양당 체제가 형성됩니다. 국민당과 공산당은 대륙의 주인 자리를 놓고 다투었는데 그 와중에 일본의 침략이 일어나며 중국 대륙에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됩니다.

마오쩌둥은 국민당과 일본과의 싸움에서 주요 지도자로 떠오르게 됩니다. 마오쩌둥 주도의 추수 폭동과 대장정 그리고 군사적으로 게릴라 전술 등으로 공을 세우고 점차 당의 핵심으로 떠오릅니다. 이후 2차 대전이 종료되고 국공 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하면서 마오쩌둥은 초대 국가 주석으로 임명되면서 본격적인 통치를 시작합니다.

마오쩌둥의 마르크스주의 수용

마오쩌둥은 사실 마르크스주의를 교조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중국화 하고자 한 사고가 유연한 인물이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두 이론인 모순론과 계급론 그 중에서 모순론을 수용하고자 할 때 마오쩌둥의 유연함이 들어 나는데요.

 당시 중국에는 두 가지 모순이 존재했습니다. 바로 중국의 봉건세력(국민당)과 이에 맞서는 중국 인민간의 모순인 근본적인 모순이 있었고, 제국주의의 일본과 중국 사이의 모순인 주요 모순이 그것이었습니다. 즉, 국민당이라는 봉건 세력(당시 가진자들 중심의)과 투쟁하는 공산당(비참한 농민들의 지지를 받던)간의 갈등을 우선시해야 하나 아니면 일본에 침략에 맞서서야 하냐 하는 고민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는 국공내전과 동시에 일본의 침략이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런 모순들이 혼재된 상황이었습니다.

칼 마르크스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근본 모순주요 모순이 있을 때는 근본 모순의 해결이 더 중요하고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유연함을 발휘해 국운이 위태한 상황에서 주요 모순의 해결을 우선시하게 되고 국공 합작과 함께 일본을 몰아내게 됩니다.

 이처럼, 신임을 얻은 마오쩌둥은 중국을 수립하면서 하나의 고민을 하게 됩니다. 바로 마르크스주의의 발전단계론(원시 공산-> 고대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따라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해야 하는데 당시의 중국은 막 탄생한 신생국가로 이전까지의 중국(청 나라)은 봉건제 사회였기 때문에 공산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준비가 되지 않았던 상황이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발전 단계를 잠깐 설명하자면 마르크스는 인간 사회는 위의 발전 단계에 따라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는데 다음 단계로 이행될 때는 필연적으로 계급의 모순이 생겨나고 이로 인해 계급 투쟁이 발생하여 기득권층이 전복되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수의 자본가가 부를 독점하고 다수의 노동자는 일을 해도 실질적으로 돈을 많이 벌지 못하게 되면서 빈부의 격차가 커지고 모순이 발생하게 되면서 노동자들의 혁명으로 인해 기존의 체제가 전복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발전 단계론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모두가 행복한 공산사회로 이행되기 위해선 부를 축적하는 자본주의 단계를 거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빠르게 공산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이 단계를 건너뛰고자 합니다. 그 과정에서 나온 중국의 참사가 바로 대약진 운동과 문화 대혁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약진 운동

우선 마오쩌둥은 공동 생산과 공동 분재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걸 집단화하기 시작합니다. 기존에 농민들을 묶어 집단에서 알아서 생산 문제를 해결하게 하도록 합니다. 본격적인 대약진 운동에 들어서면서 기존에 토지, 농기구 등을 공유하던 공동체인 농촌 합작사를 인민 공사로 전환합니다. 기존에 토지와 농기구 등을 공유하여 농사를 짓던 농민들은 본격적으로 농업, 공업, 교육, 경찰 등 모든 것을 하나로 묶인 인민 공사 안에서 해결해야 했습니다. 거기에 정부의 어떠한 자원 지원도 없이 농민 스스로 자립만으로 이를 이뤄야 했으며 각 집에 토법고로라는 용광로를 건설하도록 해서 강철을 녹여 철광석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중국 정치에서 대약진 운동

이는 본격적으로 국가가 토지와 농기구 및 시설을 공적으로 소유하고 인민들을 집단화하여 공동 생산 공동 분재 구조를 만들어 분배적 평등을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하지만, 당연히 공업이나 의료, 경찰 등 관련 지식과 경험이 전무한 농민들이 인민공사라는 틀에서 지원 없이 모든 것을 해내는 것은 사실상 말이 안되는 처사였습니다. 거기다 자신이 열심히 일하든 일하지 않던 똑같은 보상을 받게 되며 사람들은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되고 무임승차가 성행하게 됩니다. 거기다 토법고로를 통해 만든 철광석의 질이 상당히 나빠 활용할 수도 없었으며 주민들이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종국엔 농기구마저 토법고로에 넣는 상황까지 발생합니다.

대약진 운동 하에 토법고로

거기에 중앙에서 정해 놓은 할당량을 맞추기 위해 간부들의 허위 보고가 성행했고 마침 대기근까지 겹치면서 대약진 운동은 대규모의 아사자를 남기며 처참히 실패합니다. 마오쩌둥은 중국의 막대한 인구를 이용해 당시 산업화에 핵심이었던 서방의 철광 생산량을 따라잡고자 했지만 검증되지 않은 실험을 통해 대기근을 초래하게 됩니다. 마오쩌둥의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기존에 거대한 우방국이었던 소련과 사이가 안좋아 지면서(스탈린 격화, 국경 분쟁) 사회주의 모국인 소련보다도 더 빠른 발전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문화 대혁명

자연스럽게 마오쩌둥은 대약진 운동의 처참한 실패로 실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이에 물러서지 않고 본격적인 재집권을 위해 또 하나의 사건을 터뜨리는데 그것이 문화 대혁명입니다. 대약진 운동이 기존의 사회 구조와 생산 관계를 건드렸다면 문화 대혁명은 옛 문화에 대한 타파임과 동시에 공산당에 반하는 문화를 타파하기 위한 운동을 말합니다.

문화 대혁명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실권한 마오쩌둥이 복권하기 위해 일으킨 운동인데요. 당시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마오쩌둥은 정치적인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당시 공산당의 펑더화이는 인민 공사와 대약진 운동의 실패를 서신 형식으로 비판했는데요 마오쩌둥은 자신의 위상에 금이 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을 부르주아의 앞잡이로 몰아서 숙청하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해서파관이라는 문학이 이용됩니다. 해서파관이라는 희곡을 마오를 폄하하고 부르주아를 재건하려는 음모로 몰아가 당내에서 정적을 제거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또한, 마오의 최측근인 4인방을 활용하여 학생들을 선전, 선동하기 시작합니다. 마오쩌둥은 사회주의 열정이 가득한 젊은 학생들을 자극해 대중 스스로가 혁명에 참여하여 실권파를 타도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기존에 마오쩌둥은 문학과 예술은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일반 병사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인 만큼 정치가 명백히 예술보다 위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공산당에 반하는 문학 작품들은 전부 탄압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 해석 또한 굉장히 작위적이었고 많은 지식인들이 탄압받고 홍위병에 의해 여러 사적지, 음식점, 골동품점 등이 파괴되고 문학 작품이 훼손되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광기에 휩쓸려 여러 지식인들을 모욕주기도 하였고 여러 범죄를 서슴지 않게 됩니다. 한편, 당 내에선 4인방이 당내 당권파인 류사오치와 덩샤오핑(후에 국가주석) 등을 공격해 실권하였고 마오가 복권하게 됩니다.

복권한 마오쩌둥은 국내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홍위병에게 상산하향 운동을 전개해 쓸모를 다한 홍위병들을 농촌으로 흩어지게 합니다. 이처럼, 마오쩌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되며 어느덧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권력에 앉게 됩니다. 당 국가인 중국에서 당헌은 사실상 헌법 위에 존재하는 것인데 마오쩌둥의 사상은 당헌에 삽입될 만큼 강한 권력을 자랑하며 우상 숭배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천안문 광장에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마오쩌둥은 역대 중국 지도자들 중 최고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습니다. 후에 덩샤오핑도 문화 대혁명을 수습할 때 마오쩌둥을 비판하지 못할 정도로 사후에도 마오쩌둥은 절대적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중국 정치 : 민주적 중앙 집중제

따라서, 현재의 중국 정치 형태도 마오쩌둥 시기에 만들어졌는데요 공산당 1당 독재체제의 중국은 국가의 다른 어떠한 기관보다 당이 우위를 가지는 기관이었습니다. 중국 권력의 세 기둥은 당, 국가 그리고 군(PLA, 인민해방군)입니다. 그중 당은 모든 권력의 핵심이며 피라미드식으로 쌓인 당의 권력으로 입법부와 행정부를 통제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권력 구조는 이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변하지 않은 상태로 연속성이 큰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산당 당원들의 투표로 2270명(2022년)의 전국대표대회를 형성하고 다시 이중에서 선거를 통해 중앙위원회를 구성하고 중앙 위원회에서 다시 선거를 통해 25명의 중앙 정치국 위원을 뽑습니다. 그리고 정치국 위원 중 7명으로 구성된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구성합니다. 그리고 상무위원회의 서열 1위가 국가의 총 서기가 되는 것이죠.

여기서 7인으로 구성된 공산당의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상당히 중요한 조직입니다. 바로 집단의사결정기구로서 중국 최고의 권력 기구라는 점인데요. 중국 지도자들의 특성에 따라 그 역할과 중요도가 바뀌는 기구이기도 합니다. 보통 마오쩌둥, 덩샤오핑 그리고 시진핑과 같이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이 등장하여 총 서기 개인에 권력이 집중될 경우 상대적으로 상무위원회의 권력은 약해집니다. 반면 장쩌민이나 후진타오와 같이 실무 위주의 리더들의 시기에선 상무위원회의 권력이 강화되고 총 서기의 권력이 상대적으로 축소됩니다. 따라서 중국에서 그나마 민주주의의 희망을 볼 수 있었던 시기는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중국은 이런 파리미드식 선출 구조를 들어 민주적 중앙집중제라고 주장합니다. 중국에선 당의 위원들이 전국대표대회부터 총 서기까지 아래에서 위로 투표를 통해 위원들을 선출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중국의 민주적 중앙집중제는 중국식의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하지만 겉보기에는 아래에서 위로의 상향식 의사결정 기구 같지만 사실상 당원에 대한 당의 통제력이 상당히 높아 민주적 대표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사실상 공산당은 당원을 통제하고 통제된 당원은 선출을 통해 궁극적으로 총서기를 구성하며 당원이 중국 공산당에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습니다. 거기에 공산당과 경쟁하는 정당은 부재할 뿐 더러 당의 통제력 측면에서 민주주의적인 절차적 정당성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중국 정치 구조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고 공산당 1당 독재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서방의 공격에 민주주의라는 것은 오로지 서양의 시각에서 나온 것이며 전세계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논리를 통해 서방의 가치를 강요하는 미국에 대항하여 서방에서 주장하는 가치를 중국에 강요하지 말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번 포스팅에선 중국 정치 구조와 마오쩌둥 리더십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후 포스팅에선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그리고 시진핑에 대해서 차례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은 리더십마다 각각 조금씩 상이한 정치 스타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중점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포스팅으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Leave a Reply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