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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호시탐탐입니다 😊 오늘은 중국 정치에 마지막인 시진핑의 일인 지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마오쩌둥부터 덩샤오핑 그리고 장쩌민 과 후진타오까지 포괄적으로 알아보았는데요. 오늘은 현재 중국에서 일인 지배체제를 형성하여 황제로 군림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시진핑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시진핑 시대의 특징이라고 하면 엘리트의 속성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과거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기 엘리트들이 기술 관료로 자연과학과 공학 계열이였다면 시진핑 시기 엘리트들은 주로 인문 사회(경제, 법, 정치학 등) 계열 출신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게 됩니다. 또한, 바로 이전 지도자였던 후진타오와 다르게 권력 이양에 있어서 별탈없이 온전한 권력을 이양 받은 시진핑은 어떻게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했는지 그리고 시진핑이 추구하는 중국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앞선 장쩌민과 후진타오와 같은 지도자와 다르게 시진핑은 굉장히 빠르게 자신의 권력 기반을 구축합니다. 조영남 교수님이 말하는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인 군 통수권, 이념적 권위, 인적 관계(관시/파벌)에 있어서 시진핑은 빠른 시일내에 모두 갖춘 지도자입니다.
시진핑은 아버지 덕을 많이 본 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은 혁명 원로로서 산시성에서 태어나 공산주의 활동을 전개하고 나중엔 행정원 부총리를 역임한 인물입니다. 따라서, 시진핑도 아버지 시중쉰의 정치 자산을 물려받게 되는데요. 시진핑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었던 겅뱌오의 비서를 지내면서 일찍부터 인민해방군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게다가 시중쉰의 아들로서 혁명 원로들의 자제들로 구성된 태자당에 소속되기에도 유리한 환경을 가지게 됩니다. 시진핑은 후에 진학한 칭화대에서 다른 태자당의 인맥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집권 후 칭화대에서 쌓은 인맥을 바탕으로 인사 기용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부인인 펑리위안이 과거 군 문화선전대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어 이 덕에 인민해방군과도 밀접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시진핑은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시진핑 사상으로 명명하며 당헌에 이를 삽입하는데 개인 사상의 당헌 삽입은 중국에서 굉장히 어려운 것이고 모든 지도자들의 핵심 과제입니다. 자신의 사상을 당헌에 삽입한다는 것은 이를 막을 다른 세력이 없다는 것으로 권력 공고화가 완료되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헌데 지금까지 지도자의 이름이 포함된 사상이 당헌에 삽입된 것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다음이 시진핑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지도자가 재임기 중에 자신의 사상을 당헌에 삽입한 일은 마오쩌둥을 제외하고 시진핑이 최초인 것입니다.
거기다 시진핑은 반부패 운동과 정풍운동을 통해 반대 세력을 숙청하고 자신의 세력을 넓혀갑니다. 시진핑은 혁명 원로인 아버지 시중쉰의 아들로서 태자당에 속하는 것은 맞지만 그의 인사를 보면 아버지의 고향과 자신이 문혁때 상산하향 운동으로 산시성에 내려갔을 때 맺은 인연이나 같은 학교 출신(칭화대;태자당 그룹) 혹은 같은 근무지 출신 등 자신이 맺은 인적 네트워크 안에 있는 사람들을 기용합니다.
산시성에서 맺은 관계를 흔히 산시방이라고 부르며 시진핑은 총서기가 된 이후에 총서기의 권한을 이용해 자신의 세력을 중앙과 지방 요직에 충원합니다. 이로 인해 시진핑과 직접 인연을 맺은 사람이나 시진핑 측근의 사람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18기 정치국 상무위원인 왕치산과 위정성이나 19기 정치국 상무위원인 자오러지 등이 대표적인 산시방에 해당합니다.
모든 중국의 지도자들이 그렇듯 시진핑 또한 집권 후에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는데요. 대표적으로 시진핑은 정풍운동과 반부패 운동으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합니다. 시진핑은 강력한 반부패 운동을 지시하는데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강력한 활동이 진행되고 최초로 정치국 상무위원회 처벌받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호랑이와 파리 모두를 잡을 것’이라는 기취아래 약 2년 동안 18만명의 간부와 56명의 호랑이가 처벌받습니다. 이 과정에서 상하이방 출신의 정치국 상무위원 저우융캉과 공청단파 출신의 후진타오 전비서실장인 링지화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중앙군사위원회 전 부주석인 궈보슝도 실각했습니다. 저융캉은 대표적으로 시진핑의 집권을 반대한 세력이었고 정치국 상무위원이었음에도 기존에 상무위원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관습을 깨버리고 축출됩니다. 현재 반부패 운동은 장기화되어 2023년까지 진행중입니다.
반부패 운동과 함께 진행된 것은 사상 운동인 정풍 운동인데요. 시진핑은 2013년 봄부터 군중노선 활동이라고 하는 운동을 전개합니다. 활동의 내용은 형식주의, 관료주의 향략주의, 사치 등을 근절하여 당 규율을 강화하여 대중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활동을 감독하기 위해 지방에 감독조가 파견되었고 이 활동을 통해 도박과 관련된 강정간부와 뇌물 수령자 등이 처벌받고 기업을 겸직하던 당 간부도 정리되었습니다. 게다가 민주생활회라고 하는 이름으로 정치국 전원이 참석한 형태로 당 지도부들의 사상교류에 대한 비판과 자아비판이 시작되었는데, 이 회의에서 보시라이, 저우융캉, 궈보슝, 링지화 등 반부패 운동으로 처벌 받은 권력들이 반면교사로 거론되며 자신에게 대항한 자들의 말로를 인지시킵니다.
거기에 2020년 이후에는 정풍 운동의 범위가 확대되어 기존에 당원과 최고 지도층에 머물던 정풍 운동이 금융, 빅테크 기업들 및 문화와 같은 분야에도 확대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상하이방과 공청단파는 점점 약하되고 시진핑의 세력이 강화되게 됩니다.
시진핑은 대대적인 반부패 운동으로 정적들을 숙청하고 자신의 세력을 넣으면서 당, 정, 군에 자신의 세력을 강화해 나갑니다. 거기에 영도소조라고하는 조직을 활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화합니다. 영도소조는 공산당 조직표에는 없는 비공식 의사결정기구로서 부처 간 칸막이를 넘어 여러 분야와 부서를 총괄하는 초월적 권력을 가지는 기구로 일반적이지 않는 특별 임무를 수행합니다. 이른바 중국 공산당 내 최고의 테스크 포스 팀(TF Team)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영도소조는 중요한 정책 문제에 관련해서 각 부처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며 시진핑 시기 때 비약적으로 많아지고 운용되기 시작합니다. 영도소조는 비공개로 운영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쉽사리 알기 어렵고 시진핑의 주요 권력 기반이 됩니다. 대표적으로 과거에 베이징 올림픽 준비 영도소조나 자연재해 및 비상상황 영도소조 그리고 중앙외사공작 영도소조(외교안보 정책 결정기구), 웅앙대만공작 영도소조 등이 있습니다.
영도소조는 부서간 업무를 조율하고 조율된 업무를 정치국이나 상무위원에 보고합니다. 또한, 지도층에서 결정한 정책을 당,군,정이 잘 집행하는지 감독하는 등의 포괄적인 역할을 합니다. 시진핑은 이러한 영도소조에 자신을 조장으로 임명하거나 자신의 측근을 배치해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데요. 이러한 비공식 기구에 강한 권력을 부여함으로서 공식 기구의 힘을 빼고 권력의 집중을 추구하는 겁니다.
시진핑은 자신이 추진한 군중노선 활동에도 중앙당 군중노선 교육실천 활동 영도소조를 설치하였고 류윈산을 조장으로 임명하여 정풍 운동을 지휘하게 합니다. 따라서, 기존에 장쩌민과 후진타오를 걸쳐 분산되어 있던 권력이 다시 시진핑이라는 한 점으로 집중되고 그에 따라 정치국 상무위원회와 정치국의 권한은 다시 약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시진핑은 집권 2기에 들어서면서 시진핑 사상을 전면적으로 등장시키고 당헌에 삽입시킴으로서 자신의 권력 공고화를 달성하게 됩니다. 중국은 당 국가이기 때문에 당헌이 헌법보다 앞서는데 이때 개인의 사상이 당헌에 침투하는 것은 시진핑의 일인 지배 체제와 권력 확립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시진핑이 내세우는 시진핑 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삼개대표 주요사상, 과학적 발전관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으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한 가이드 라인으로 제시됩니다. 구체적으로 시진핑 사상은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로 불리며 사회주의 현대화와 중화민족의 대부흥을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시진핑 사상이 제시하는 달성 목표는 크게 두 가지로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전면 샤오캉 사회와 사회주의 국가로서 조화롭고 아름다운 사회주의 강국을 만들겠다는 사회주의 현대와 강국이 있다. 사실상 이것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중국을 세계 1위의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가 담긴 것이며 중화민국의 대부흥이라는 측면에선 홍콩과 대만에 대한 공세적인 목표가 담겨있습니다.
두 가지의 목표는 각각 2021년과 2049년에 달성되는 것으로 샤오캉 사회는 중국의 성장으로 인한 GDP 증가를 예시로 이미 도달했다고 선언했고 2049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실현하고 이를 위한 중국몽을 설계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개인의 사상을 재임기에 당헌과 당규에 삽입하는 것은 마오쩌둥 이후에 매우 이례적인 것이고 ~사상의 이름으로 삽입하는 것도 마오쩌둥 이후로 처음입니다. 거기에 사상에 자신의 이름까지 들어간 것을 보면 현재 시진핑의 권력이 얼마나 공고한지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시진핑은 자신의 정통성을 마오쩌둥의 반열에 올리고 시진핑 사상 학습을 위한 애국주의적인 교육을 진행합니다. 당연하게도 시진핑 사상과 관련해선 어떠한 이의 제기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며 개인 숭배가 일어나게 됩니다. 거기에 시진핑은 드디어 종신집권을 위한 개헌을 시도하는데요. 사실 다른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정권을 잡은 권위주의 지도자들도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개헌을 시도하는 것을 보면 시진핑도 집중된 권력을 계속 유지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입니다.
기존에 지도자들은 자신의 집권 2기에 후계자를 사전에 선임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시진핑은 집권 2기에 후계자 선임을 무산시키고 3연임을 위한 작업에 착수합니다. 그 결과로 2018년 3월 기존에 공산당 총서기의 2년에 걸쳐 10년의 임기제한을 폐지하는 헌법 개헌안을 99.2%의 찬성률로 통과시켜 종신집권권의 시대를 열게 됩니다. 이로서 시진핑의 일인 지배 체제가 열리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시진핑의 일인 지배가 공고화되면서 시진핑 3기는 이전보다 더 시진핑 세력이 득세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기존 시진핑 집권 1기와 2기까지만 해도 시진핑 세력이 득세한 것은 맞지만 여전히 상하이방과 공청단 세력이 존재했지만 현재 3기의 중국은 거의 시진핑 세력이 싹쓸이했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압도적입니다. 특히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공청단과 상하이방 인사들이 모두 퇴진하고 시진핑의 인사들로 채워졌습니다. 리창은 과거 시진핑이 저장성에서 당서기를 했을 때 비서장이었고 당쉐샹은 상하이에서 당서기를 맡았을 당시 비서장었던 인맥으로 현재의 상무위원회에 속하게 됩니다. 차이치 또한 시진핑이 푸젠성의 공산당 부서기였을 때 부하였습니다.
자오러지는 시진핑의 무한신뢰를 받는 인물로 자오러지의 아버지와 시진핑의 아버지는 혁명시기 같은 부대의 동지로서 매우 가까운 사이여서 아들끼리도 관계가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왕후닝은 대학교수 출신으로 장쩌민의 이미지와 대표이론인 삼개 대표이론을 만든 인물이고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을 만드는 것에도 참여하였습니다. 능력을 인정받은 왕후닝은 시진핑에 의해 발탁되었고 현재의 시진핑 사상 및 중국몽을 구상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한편 정치국에서도 시진핑 세력이 많게는 15인 정도가 시진핑 세력으로 분류되고 나머지 세력에서 공청단파는 모두 정치국원이 되지 못하면서 사실상 그간 정치 세력 간의 균형이 정치국에서마저 꺠어진 형태를 볼 수 있습니다. 이로서 특정 정치 세력이 정치국과 상무 위원회를 독점한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으며 이를 보면 권력이 그만큼 시진핑에게 몰리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현재 중국의 황제라고 불리는 시진핑 시기 정치를 알아보았는데요. 현재의 시진핑이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여 시진핑의 일인 지배를 완성하였고 강화한 권력으로 출범한 3기 정권의 모습까지 대략적으로 알아보았습니다. 중국은 천안문 사태 이후 계속적으로 검열과 통제로 민중을 다루었는데 엘리트 정치에서도 시진핑의 일인 지배가 확고해진 시점에서 앞으로 중국 정치의 균열이 존재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만약 균열이 생긴다면 현재 중국이 직면한 저성장 국면이 큰 유효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중국이 현재 직면한 문제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코로나 19 이후 지속적인 경제 성장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고 중국엔 빈부 격차가 심하며,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심합니다. 게다가 중국의 동남부에 거의 모든 인구가 밀집해서 살아가고 있기도 합니다. 거기에 신장, 위구르, 티벳 등의 분리 독립 요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대외적으로 시진핑 정부가 공세적인 태도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여러 나라와 마찰을 빗고 있고 특히 미국의 제재들로 인해 현재 중국이 휘청이고 있다는 기사들이 많이 나오곤 합니다.
이처럼 산재하는 위험 앞에서 중국의 선택이 궁금해집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지도자의 정치 체제가 궁금하시면 아래 링크로 가셔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hosytamtam.com/category/%ea%b5%ad%ea%b0%80-%ec%a0%95%ec%b9%98/